[스크랩] 개망초꽃은 시들지 않는다

모란이후 2011. 6. 16. 06:03

 

 

6월 들어 비 날씨의 연속이다.

요즘 산과 들에 나서보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하얀 꽃이 보이는데 다가서보면 개망초꽃 무더기다.

여름에 피기 시작하면 힘이 남아있는 한 가을까지 계속해서 핀다.


개화기 이후 해외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들어와

급속도로 퍼진 이 개망초는 망초와 함께

이 땅에 뿌리를 내려 논이든 밭이든 쉬임없이 자라

얼마나 농부를 괴롭혔기에 망초, 개망초라 부르는가?


개망초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저 북아메리카 원산(原産)이다.

왜풀, 넓은잎잔꽃풀, 개망풀이라고도 하며

긴 잎자루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6∼9월에 흰색 또는 연한 자줏빛 두상화가 산방꽃차례를 이루며

가지 끝과 줄기 끝에 가지런하게 달린다.

어린잎은 식용하며 퇴비로도 쓰는데,

그래도 한방에서는 감기나 위염 등에 처방된다.

 

 

♧ 개망초 - 목필균  


돌아가지 않으리라

내 유년의 뜰에


번들거리는 윤기 바르고

돌아오리란 약속

모진 바람에 무너져 버리고

흐려진 눈

주름진 이마

거친 목소리

삐그덕거리는 관절로

돌아보네


나팔꽃 덩굴손으로 넘어서는

오래오래 묵은 기억들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여름내 지천으로 피어나던

꽃고무신의 유년은

어디로 흩어져 갔는지


잡풀 우거진 뜨락에

개망초만 어깨를 부딪치며

바람 소리 듣고 있는데

돌아오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마음만 오가고 있다

 

 

♧ 개망초꽃 - 김정호(美石) 


어둠이 내리는 밤이 되어도

더 울지 못한다

모두가 제 자리로 돌아간 시간

달빛이 내리는 들판에

무리 지어 피었다가

고깔지게 져버린

저 천하지 않은 자존심

두 해만 살다 갈 삶이지만

누가 뭐래도 너는

바람도 잠재운 들판의 수호신

똑바로 고개 들고

지울 것 지워 버리고

버릴 것 버리고 살아가며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네 이름은

개망초꽃

 

 

♧ 개망초 마을의 풍경 - 고정국


열을 불러 모아도 한 몸 구실에 미치지 못할

산 번지 미개발구역엔 무허가 꽃들이 밀려와 산다

순순히 몸을 비끼며 개망초도 피어 있다.


스스로 제 밥그릇은 제가 알아서 챙기는 것

여태 고기 맛은커녕 정부미 한 톨 받은 바 없지만

끝끝내 인가를 향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던….


개망초, 개망초라니 참말로 개 같은 세상에 와서

잡것들 잡소리 같은 사설시조나 읊조리다가

한심한 식솔들 앞에다 뿌려놓던 팝콘 한 홉.


갑자기 광란의 바람이 야생종 개떼를 풀어

먼 중지의 진정서가 여지없이 발겨진 후

수척한 사내 하나가 젖은 팝콘을 줍고 있었다.


 

 개망초꽃 -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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